개원 2주 전쯤이 되었을때 구인도 개원 시작은 문제 없을정도로 완료되었고, 인테리어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간판업체와도 디자인 및 내부사인에 대한 조율이 다 끝난 상태로 순조로운듯 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는듯 해서 별거 없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합니다.
1. 소방실사에서 빠꾸먹다
소방점검을 나왔는데,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원내에 소화기가 없고, 완강기 위치가 잘못됐고, 안내표지판이 없다 어쩌구 하면서 빠꾸를 먹었습니다.
개원전에 보건소 및 소방에서 실사가 각각 한번씩 나오는데, 둘중에 하나라도 빵꾸가 나면 개원 허가가 안나옵니다. 둘다 그렇게 빡센편은 아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크게 잘못된건 없는지 걱정이 많이 되긴했습니다.
미흡한점 전달받았고 다행히 큰 무리 없이 두번째 점검에서 통과하게 됐습니다
2. xray 세팅에서 멘붕이...
원내 인터넷망 설치하고, 컴퓨터 설치하고깔고, 의사랑 차트설치까지는 순조로웠는데... xray 세팅에서 멘붕이 왔습니다.
의사랑이던 비트던 이지스던 처음 진료차트를 깔면, 완전 순결한... 제로상태의 차트입니다. 세트오더가 하나도 안만들어져있고, 약 코드도 안잡혀있는데,..
엑스레이도 안잡혀있더군요. 엑스레이 세트오더야 내가 밤새서 만들면되는데, 이거랑 xray 에서 매칭을 시켜야되는게 문제였습니다.
xray 찍을때마다 방사선 조사량을 설정해줘야 하는데, 매번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니 처방한 엑스레이마다 일정한 값이 자동으로 입력되게 하는 세팅이 필요하고, 이걸 위해서 처방내고 엑스레이 찍어서 세팅값정하고.. 이거를 모든 신체부위, 모든 엑스레이마다 다 해야하는겁니다..
wrist AP 랑, wrist AP, lat 랑, wrist AP, lat, both oblique 가 각각 다 다른 오더이더군요.. 여기서 좌우도 다르고..
진짜 멘붕왔습니다. 저희 팀장 (사무장) 과, 다른 방사선사 1인, 그리고 저까지 3명이 붙잡고 하루종일 이거 세팅값만 잡고 있었습니다.
3. 개원 10일전 문이 잘못달려있다는걸 인지하다
인테리어 막바지에 원내 커튼을 달려고 업자를 불러서 여기저기 측정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가 이상한겁니다. 씨암실에서 의사가 주사하고 나갈때 환자의 맨살이 노출될 수 있어 커튼으로 좀 가려놓으려고 설치해보려고 하는데, 사이즈 측정하던 업자분이 문이 이상하다고 하는겁니다.
무슨말인가 싶어서 보니까... 씨암실 문이 미닫이가 아니라 여닫이로 달려있던겁니다.
이런식으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으니 문 뒤쪽에 주사를 놓지도 못하고, 씨암실 문은또 왜이렇게 큰지 씨암 베드가 문 끝에 걸려서 공간이 굉장히 좁아지게 됐습니다.
처음엔 별거 아니겠거니, 인테리어 담당자한테 이거 미닫이로 고쳐달라고 얘기했더니, 공사가 1주일은 더 미뤄진다고 하더라고요. 벽에 타일까지 다 붙여놓은 상태고, 문은 방사선 차폐까지 처리되어있는 문인데, 문도 새로 제작, 벽체 타일도 뜯고 아예 새로 올려야 한다는겁니다. 돈도 1500이상 더든다고 하고..
순간 등에 식은땀이나기 시작하더군요. 인테리어가 1주일 밀리면, 개원일도 미뤄야 하는 상황이고, 이걸 미루면 예상해둔 개원날짜에 소집해둔 직원들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잠깐 고민했으나, 이걸 지금 안고치면 병원 떠날때까지 못고치는거라 더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미 인테리어가 완성되어서 입주청소까지 끝난 상황이었지만 타일 일부 뜯고 벽체 수선해서 문 공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청소해놓은 병원이 다시 먼지를 뒤집어 썼구요 입주청소도 다시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테리어 업자가 미워지더군요. 왜 이런걸 알아서 안해주는걸까. 이전에 상의했던 도면 보니, 떡하니 여닫이고 그려져있고, 그걸 컨펌한게 저였기 때문에 뭐 달리 핑계댈것도 없었습니다. 다 제 책임이죠 뭐
4. 세트오더
기본 세트오더 잡는거 별거 아니겠거니 했는데... 이거때문에 개원 1주일 전부터는 새벽 1-2시 넘어서 집에 갔습니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열심히 만들어 놓고 보면 뭔가 하나 실수했고, 하나 실수한거 보면 앞에서 만들어놓은 세트 20개가 다 잘못했고 무한반복.. 이거 진짜 해봐야 압니다 ㅜㅜ 이 일만큼은 컨설팅이고 나발이고 아무도 해줄수가 없어서 직접 다해야 합니다.
처음 개원하시면 원내에서 쓰는 약 하나부터, 스플린트, 본깁스, 진단서, 주사약제, 경구용 약제, xray 등등 모든 코드를 직접 다 잡아야 하고, 빠른 진료를위해 세트까지 다 만들어야 하는데, 부원장으로 일하던 병원에서 복사해와야지 라고 생각하면 큰코 다치실겁니다.
개원해보시면 알겠지만, 쓰던 약도 다 달라지고, 세트오더도 본인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말 시간 많이 잡아먹습니다. 사실 개원 전에 다 마치지 못하고, 실제로 환자 진료 보면서 오류난거를 계속 해서 수정하 나가는 작업이 2-3주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5. 직원 유니폼
이건 입이 두개라도 할말이 없는 내용인데... 직원 첫 소집일에 맞춰 유니폼을 배분할려고 주문을 해놨는데, 이게 배송이 생각보다 느린겁니다. 넉넉하게 3일이면 배송받을거라 생각해서 직원 소집일 1주일도 전에 주문해놨는데, 3일전까지 배송이 안와서 전화해서 물어보니, 보통 7일이상 걸린다는겁니다. 빨리 달라고 코멘트를 써놔야 이미 만들어진 재고로 빨리 배송해준다는 황당한 말을 듣고... 바로 보내라고 닥달을 해서 겨우 재고 있는 물량만 받아왔는데...
직원 소집일까지 못받은 사이즈의 옷도 있어서, 직원중 2-3명은 첫날 유니폼을 받지 못했습니다.
직원 명찰도 따로 만들어둔게 있는데, 신경서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업체에서 실수를 해서 위아래를 거꾸로 만들어서 보내더군요. 클립으로 명찰을 꽂으면 이름이 위아래가 바뀌어져 있는... 업체에 화내고 지랄한다고 당장 내일 바꿀수 있는것도 아니고... 황당했습니다.
6. 진료 시스템 메뉴얼
이게 제일 멘탈 깨지는 일이었는데요, 부원장으로 일할때는 숨쉬듯이 당연했던게 개원하고 나니 전혀 당연한게 아니었던 겁니다.
환자가 오면 -> 접수대에서 인사를 하고 -> 처음오셨는지 물어보고 -> 접수를 하고 -> 진료실 앞으로 보내고 ->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부르고 -> 의사는 진료를 보고 -> 엑스레이 처방이나면 방사선과에서 부르고-> 등등.......
병원마다 고유의 진료 시스템이 있는데, 직원들에게 미리 만들어 놓았던 메뉴얼을 제공하여 줬고 교육도 시행했지만, 실제로 이게 몸에 체득되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는걸 이때 깨달았습니다.
어느정도 손발이 맞겠다 싶었을때, 마침 내원하였던 환자 1명이 있어서 개원초라 부족한 면이 많음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하고 진료를 시행해봤는데..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는겁니다. 환자를 어디로 보내야할지 다들 햇갈려서 우왕좌왕 하고 있고, 엑스레이실에서 사진은 찍었는데 간호부에서는 이 얘기를 못들어서 환자는 계속 대기만 하고 있고, 무전기는 다들 사용이 익숙치 않아서 의사전달이 잘 안되고, 차트는 계속 오류나고... 어찌저찌 진료는 봤는데 진단서 써달라는 환자 요구에... 의사 도장이 없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고 나니 등에 식은땀이 나더군요.
부원장 시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진료시스템이, 내 머릿속에는 있지만 직원들 머릿속에는 전혀 없다는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직원들도 이전 직장에서 일해본 경험은 있으나, 새로온 병원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익숙한게 없으니 어찌 해야할지 모르는게 당연한겁니다.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될때까지, 직원들 손발이 맞을때까지 무한번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지않겠습니까. 개원날짜를 며칠 미루고, 모든 직원이 스탠바이한 상태로, 가상의 환자역할을 하는 직원을 설정해서, 접수부터 치료 후 결제 퇴실까지 몇번이고 반복했습니다. 족히 100번은 넘게 해본것 같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어느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더군요.
지나고 보니 추억이긴한데.. 개원전 2주일은 끔직할정도로 혹독했던 시간었습니다. 읽어보면 느끼셨겠지만 "이게 그렇게 까지 힘들만한 일인가?" 싶으실수도 있는데요,
내가 남밑에서 일하다가 실수했을때랑,
내가 최종 책임자가 되는 상황에서 일이 잘못되어가는건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더군요.
개원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여기저기 문제점들이 눈에 보일때마다 심장이 철렁하고, 식은땀이 흐릅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개원을 몇일 미루기도 했지만, 미루는 만큼 '돈'이 깨지죠. 직원들 월급은그대로 나가야 하니깐요.
그래서 개원전 2주간은 1년차 주치의 시절 이후로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혹독했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아니었으면 개원할때 혼자하는걸 추천했을거 같은데요
혼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든것들이 있어서, 저처럼 악으로 깡으로 몸으로 부딪히는 스타일 아니면 그냥 개원컨설팅 껴서 편하게 하라고 추천하는게 바로 이런 경험때문에 그렇습니다.